첫인상

덥수룩한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세 달 만에 미용실에 갔다. 유행에 뒤떨어진 패션 감각을 어떻게든 만회하고자 백화점에 들려 분수에 살짝 넘치는셔츠를 하나 샀다. 혹여 지루한 시간이 이어지는, 공포스런 상황이 연출될 까 두려워 인터넷을 뒤지며 각종 우스개 소리를 갈무리하기도 했다. 제대 후 처음으로 갖는 소개팅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찍팅이었다. 학교 도서관에서마음에 쏙 드는 여학우를 보게 되었는데, 우연히 같은 과후배의 동아리 동기였다. 그 녀석을 반 쯤 협박하다 시피해서 얻어낸 자리였다. 연애 감각이 제대로 회복되기 전에갖는 미녀와의 소개팅이라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어쩌랴. 그녀는 예뻤고, 나의 정신은 아직 '안되면 되게 하라' 식의 군인 마인드에젖어 있었다.

그 때 내가 소개팅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더 잘 보일 수 있을까 고민했던 이유는하나였다.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연애에 있어서 첫인상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것은 연애계에서 통설적 지위를 점하고 있다. 첫 만남에서 남녀는 서로를 알지 못한다. 물론, 간단한 인적 사항이야 알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선 자리가 아닌 소개팅 자리라면, 사실그런 것들은 거의 중요하지 않다. 소개팅 자리에서 중요한것은 첫 20분이다. 20분 동안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이성적 매력을 판단한다고 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목소리와 체격, 헤어스타일, 피부 색, 눈동자 색, 인상, 표정, 몸짓 등 수많은 정보를 인지하여 상대방이 나에게 매력적인 존재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그리고 그 20분을 통해 내린 결론은 좀처럼 바뀌는 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좋은 첫인상을 심어주려고 그토록 노력했던 것이다.

소개팅은 실패로 돌아갔다. 잘 보이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패착을 곰곰히 분석해 보았다. 남의 마음 속이니 문제점을 정확히 짚어 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아무래도 군대 스타일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비호감'으로 느껴졌으리라 결론 내렸다. 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팽 당했다고 생각하면,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아마 연애에서 자신의 첫인상을 고민하는 청년들은 나 하나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수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서 마음에 드는 미남, 미녀를 얻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첫인상을 고민해야 하는 한 명의 '중년' 남성이 있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이다. 오늘도 전국 각 도심에서는 그의 퇴진을 원하는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 불과 육 개월 전만 하더라도 과반이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한다니. 이걸 연애사로 따진다면, 서로 사진만 보고 열렬히 원해서 소개팅 자리에 나갔으나, 첫인상에 완전히 실망해 일 초라도 빨리 커피숍을 뜨고 싶어하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좋은 첫인상을 보이고 싶어 말 그대로 불철주야 노력했다. 일선 공무원들에게 '새벽별 보기 운동'을 제안했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온 국토를 공사판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며, 투자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공기업의 민영화를 발표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하게 될 우리 국민들에게 값 싸고 질 좋은 소고기를 먹여더욱 열심히 일하게 도와주겠다며, 검역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미국산 쇠고기를 들여오겠다고 했다. 문제는 이 모든 노력이국민들에게 '비호감'으로 비춰졌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성장 일변도의 정책보다는 환경과 같은 사회의 제 가치들을 고려하는 정책을 선호한다. 공기업과 의료보험을 민영화할 경우 민생의 기반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는 불안감도존재한다. 미국산 소고기 문제의 경우-이것이 가장 결정적인 비호감 요인인 듯 한데-아무리 값싼 소고기를 먹더라도 행복한 삶과 직결되는 건강의 문제를 단순히 운에맡기진 않으리라는 너무도 당연한 판단이 그 밑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어떤 상대방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결론이나온다. 그는 선진화를 외치면서 그 방안을 실천에 열심히옮겼다. 하지만, 그가 추구한 80년대식의 성장 제일주의와 시장 만능주의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즉 비호감인 이성상이었다. 다시 한번연애사에 비추어 본다면, 막 제대한 복학생이 군인정신을 매력포인트로 내세우겠다며, 예비군복을 입고 소개팅 자리에 등장한모습이랄까.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국민들이 어떤 이성을 원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봐야 한다. 그 간 추진하던 정책들을 이름만 바꿔서 밀실에서 추진하고, 실효성 없는 추가협상 내용을 재협상에 준하는 내용이라 과대 선전할 때가 아니다. 첫 만남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인정하고, 어떻게든 애프터라도 따내고자 분골쇄신하여 과거의 실패를 분석하고 극복할 때다. 소개팅에서 또 하나의 유력설이 있다면, 첫인상보다 둘째 인상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요구를 잘 파악하고 진정 낮은 자세로 임하여 두 번째 만남에서는 좋은점수를 딸 수 있기를 빈다. 아참, 요즘 인터넷에서는 대통령을 설치류 동물에 비유하며 비난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띈다. 너무 낙심하지 말길 바란다. 첫 만남의 실패가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해 버리면, 너무 우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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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LpAsS | 2008/07/04 10:40 | PeNDuLuM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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