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zer - メリクリ (메리크리 보아 커버)








'버디 홀리' weezer 형님들이 컴백하신다.

신보는 이른바 '레드 앨범'이라 불리고 있다는데,

이런식으로 불리는 앨범들이 명반으로 남았음을 상기해 보면(예를 들면 메탈리카의 블랙앨범?),

나름 알짜로 내공을 모은 앨범임에 틀림 없다.

꼭 구입하리라 생각 중이다.


그런데 말이지.

이들의 신보에 대해 인터넷 검색하던 중에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무려 보아의 '메리크리' 리메이크!!!!!


뭐 '보아의 가창력과 작품성에 반해 그녀의 명곡을 감히 커버해보고 싶었습니다.

참, 보아님이 한국인이시라면서요? 역시 한국은 위대한 나라군요,

독도는 한국땅입니다!!!' 라는 이유에서 리메이크한 건 아니다.

리드 보컬의 아내가 일본계 미국인인데, 보아의 팬이라 한다.

그래서 특별히 신보의 일본판에만 수록된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면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배가 되었다는군.


좀 어색하긴 하지만, 듣기에 나쁘진 않다.

오히려 술 취한 듯한 목소리가 중독성이 있는 듯.

세 시간 째 이 노래만 듣고 있다.


아래는 보아의 라이브.

마지막에 수줍은 듯 씨익 웃는 모습 쩐다.















by MoOLpAsS | 2008/07/12 02:29 | MuSiC | 트랙백 | 덧글(1)
[서평]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오언 깅그리치 저




들어가며...


영화 역사상 가장 멋진 교수님은 누굴까? 80년대에 영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인디아나 존스 교수라고 대답할 것이다. 채찍 하나로 총을 든 악당들에 맞서는 기백. 밧줄 하나에 기대 고도의 절벽 사이를 뛰어넘는 무모함.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썩소’ 하나를 날릴 줄 아는 여유. 이러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주인공에 걸맞는 인간미와 고고학 교수라는 지적인 능력의 결합은 그를 80년대 헐리우드 영화계가 배출한 최고의 매력남 중 하나로 만들었다.

여기 한 노교수가 인디아나 존스처럼 되고자 한다. 단, 성배 따위를 찾는 게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기 판본들을 찾아 떠난다. 미국의 과학사학자 오언 깅그리치 얘기다. 코페르니쿠스 전문가인 그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는 저작을 통해 역사를 바꾼 3대 과학서 중 첫째로 꼽히는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대해 조사해 나가는 과정을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게 전달하려 한다. 책에 따르면, 저자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대한 긴 연구 끝에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기 전에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전복적인 내용에 비해 턱없이 적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도 언급되지만, 케스틀러라는 작가는 그런 이유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이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25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의 초기 판본들의 뒤를 쫓게 된다. 본서는 이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되는 데 실패했다. 내 생각에 본서는 실패한 책이다.



코페르니쿠스


내 생각을 펴기에 앞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책인 지부터 살펴보자. 이 책이 발표되기 전, 세상 사람들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다. 헬레니즘 시대 프톨레마이오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론에 기반하여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체계를 완성했다. 이 체계가 행성의 역행운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주전원(epicycle)을 도입하여 천동설의 체계를 계속 유지한 채로 관측되는 데이터들을 설명하려 했다. 계속된 주전원의 추가는, 신의 섭리에 따르자면 최대한 단순해야 할 체계를 점차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를 버리지 않았다. ‘하나님이 지구를 멈추셨다’는 성서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닌 상황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념을 뒤집은 것이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였다. 코페르니쿠스는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 같은 모습의 태양계를 거의 비슷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태양계가 실제로는 타원형이라는 점은 예상하지 못했고, 여기서 오는 데이터의 오차를 설명하기 위해 다시 주전원을 추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구가 움직인다는 혁명적 주장은 그런 과오를 덮고도 한참 남는 것이다. 태양계가 타원형으로 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 낸 케플러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있었기에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지동설의 현시대적 의미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현대에 책으로 다룬다면 어떤 내용이 가능할까? 우선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대해 현대 과학 기술을 토대로 그 과학적 정점과 오점을 짚어내는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 유용한 책이 되진 않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천문학자는 물론 일반인들마저도 태양계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물론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전문적 영역에서는 뒤질지 모르지만, 전반적인 상식의 영역에서는 지금의 일반인들이 한참 위다. 정규 교과 과정을 마친 사람이라면 태양계가 타원으로 돈다는 사실쯤은 상식으로 알고 있다. 각 행성의 크기도, 목성과 토성이 다른 행성에 비해 훨씬 크다는 식으로, 대강은 알고 있다. 모두 코페르니쿠스가 몰랐던 것들이다. 전자망원경으로 태양계는 물론이고 은하계 너머를 관측하는 이 시대에,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에 대한 과학적 접근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을 주제로 책을 쓸 때 더 나은 접근 방식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후대 사람들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냐 하는 점에 집중하는 것일 게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게 마련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것은 주로 철학자들의 몫이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고대인들이 세상을 인식하는 틀을 제공했다. 중세인들은 성서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 근대인들은 데카르트와 칸트 같은 대 철학자들이 세운 체계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아담 스미스 역시 훌륭한 예다. 근대가 개인을 발명하자,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는 극소수의 상류층에게만 허용되던 ‘부를 향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 새로운 경제 체제는 아담 스미스가 ‘시장 기구’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나서야, 비로소 일관성 있게 설명될 수 있었다. 몇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는 요동치는 증시를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인식 틀에 기반하여 바라본다.

그런데, 이러한 인식의 틀을 제공하는 역할은 비단 인문학자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자연과학자들도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변화시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세상의 모든 물질이 다섯 개의 원소만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말했을 때 당대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 전과 달라졌을 것이다. 라부아지에 시대의 화학혁명은 세상의 모든 물질이 각자 고유의 원소로 이루어져있다는 현대인들의 물질관을 거의 완성시켰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물질들을 그 특성에 맞게 인간의 이익에 따라 활용할 수 있다는 관념을 만들어냈다. 뉴턴의 물리학은 또 어떤가.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주의 운동을 ‘신의 뜻’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렇게 화학혁명과 <프린키피아>는, 각각 지상계와 천상계를 정신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다.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역시 큰 인식의 변화를 불러온 책 중의 하나다. 이 책은 지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신의 말씀을 과학적 증거를 통해 부정함으로써(물론 코페르니쿠스 자신은 천문 계산의 한 방법론에 불과하다며 애써 그 의미를 축소시켰지만) 이후 자연과학이 보여줄, 인간의 말이 신의 말씀을 전복시키는 행보의 첫걸음이 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후대의 사람들의 인식에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다룬다면 그 의미가 깊을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이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어떻게 읽혔고 그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 기반한 그들의 연구가 다시 후대 사람들의 세계관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 연쇄과정을 탐구한다면, 그것이 코페르니쿠스를 다루는 과학사 학자의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저작으로써 매우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본서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의 첫 페이지를 대할 때 바랐던 내용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본서의 문제점


그러나 저자는 나의 기대를 정면으로 배반했다. 그렇다고 과학적으로 논박하는 내용을 담은 것도 아니다. 본서에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혁명적인 책이 사람들의 인식에 끼친 영향은 여기저기서 짧게 다뤄질 뿐이다. 본서의 주된 내용은 저자가 초기 판본들을 쫓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정에 주로 할애되어 있다.  아마도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다빈치 코드’ 류의 역사추리물의 서술방식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일종의 모험소설 형식을 빌려옴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하려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법정의 공방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나, 각 챕터에서 주요 인물의 행적을 조사할 때 베어 나오는 추리소설적인 문체, 각 판본을 쫓는 과정에서 겪는 난관들을 최대한 극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한 점 등이 그 증거다. 거기에다 여러 군데에 초기 판본들을 연구하는 자신과 동료들의 생생한 사진을 배치함으로써 현장감마저 제공하려고 한다. 독자들이 자신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초판본을 추적하는 인디아나 존스 교수로 여기고, 그 여행에 신나는 마음으로 동참하게끔 유도하려고 한다. 내용보다는 재미에 승부를 걸고자 하는 것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다. 깊은 내용이 없을 지라도 많은 대중들이 재미를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식견을 조금이나마 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본서는 결정적으로 재미마저 놓치고 있다. 일단 고서를 찾아 떠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지 못하다(물론 저자의 사반세기에 걸친 연구과정이 가지는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이 재미없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는 달리, 여기에는 어떠한 ‘액션’도 없다. 저자가 보여주는 ‘액션’이라고는 이 도서관 저 도서관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뿐이다. 그나마 스릴있는 부분은 첫 챕터의 법정 진술 과정이 전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이야기 구성의 문제다. 본서는 크게 세 개의 이야기 축으로 이루어진다. 저자가 초기 판본들을 하나하나 추적해 나가는 ‘모험’, 또 하나는 레티쿠스, 튀코 브라헤, 갈릴레이, 케플러 등의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할 때 나오는 ‘역사적 에피소드들’, 그리고 그들이 제기한 여러 과학적 주장들에 대한 간단한 ‘이론적 내용들’이 그것이다. 저자의 모험의 지루함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등장인물들의 ‘역사적 에피소드들’은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끼친 영향과 거의 관계없는 것들이다. ‘이론적 내용들’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딱 한 가지 이해한 부분이 있다. 세 번째 챕터에는 저자의 동료인 디자이너 임스가 한 전시회에서 코페르니쿠스 체계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가 화성의 궤도를 관측함에 있어서 같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시물을 제작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내용은 나도 이해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임스 역시 나처럼 이 책에서 설명한 다른 이론적 내용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임스가 이해한 것 정도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최고점일 듯 하다.). 게다가 이 세 이야기들은 하나로 깔끔하게 묶이기 보다는 독자를 혼란스럽게만 할 뿐이다.

또, 다빈치 코드와 같은 역사추리물에서는 역사적 인물들의 ‘에피소드들’과 그들이 제기한 ‘이론적 내용들’이 주인공의 ‘모험’의 결정적 단서들로 작용한다. 그래서 재미있다. 그런데 그것은 픽션이기 때문에 가능한 ‘설정’이다. 반면에 본서는 논픽션이다. 작위적 설정 자체가 가능하지 않다. 저자의 ‘모험’에 결정적 단서가 되는 것은 기껏해야 ‘A본과 B본의 필적이 같더라’ 하는 것이 전부다. 결국 저자가 이 책의 기본적 컨셉트를 역사추리물 스타일로 잡은 순간 이 책의 재미없음은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치며...


이 책은 대중들에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가져온 인식의 혁명적 변화를 다루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모험소설적 재미를 추구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실패한 책이라고 본다.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코페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상당히 많이 읽힌 책이구나’가 전부일 것이다. 그것이 일반인들에게 과연 유용한 정보인가. 만약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 책이 상당히 많이 읽힌 책이며, 이 책을 읽은 수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에 의해 사람들의 자연관, 나아가 세계관은 어떻게 변화했다.’라는 부분까지 진지하게 다뤘다면 진정 뛰어난 과학교양서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모험담에 집중함으로써 자신의 과학사가로서의 식견을 통해 대중에게 과학사적 교양을 제공할 기회를 잃어버린 듯 하다. 저자는 인디아나 존스도, 칼 세이건도 되지 못했다.

코패르니쿠스의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는 결코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본서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은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이다.








by MoOLpAsS | 2008/07/10 15:59 | PeNDuLuM | 트랙백(1) | 덧글(0)
PD수첩 사건의 4가지 특징 <PD저널>

PD수첩 사건의 4가지 특징


[기고]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2008년 07월 08일 (화) 12:54:53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 webmaster@pdjournal.com

▲ 김창룡 교수
〈PD수첩〉사건이 정국의 현안으로 부상했다. 미디어마다 서로 다른 주장과 사실을 내놓고 있고 정치권의 공방도 뜨거워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않다. 판단을 돕기 위해 사안의 본질을 보여주는 4가지 특징을 정리한다.

첫 째, 2008년 7월 검찰이 수사 중인 〈PD수첩〉사건은 소위 촛불정국과 맞물려 조중동과 경향, 한겨레 등이 단순한 대립적 보도를 넘어 격한 난타전이 오가는 ‘미디어 대리전’이라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조중동은 KBS 공격에 이어〈PD수첩〉을 계기로 MBC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신문과 방송의 전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런 양상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실의 과장이나 정보의 편식, 왜곡을 통해 미디어 소비자들이 그릇된 판단을 가져올 수 있기때문이다.

조 선일보는 7월3일 주필 강천석 칼럼을 통해 ‘광우병 소동 1년 후의 한국을 가다’라는 제목으로 〈PD수첩〉을 공격했다. 저널리스트에게 금기시 되는 상상력을 이용하여 MBC를 비판이 아닌 조롱을 하며 “〈PD수첩〉제작진은 결국 사표를 낸다”는 극단적 결말까지 적시하고 있는 식이다.

둘째, 〈PD수첩〉사건은 청와대와 한나라당, 야당 등이 적극적 개입과 간섭, 과다한 주장이 얼룩진 정치적 사안으로 비화된 특징아닌 특징이 있다. 특히 집권 한나라당의 주장은 마치 수사의 방향과 결과까지 예고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구체적이고 강력하다.

2008년 6월 26일 열린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언론의 생명은 진실보도에 있는데 최근 〈PD수첩〉은 광우병 왜곡 보도를 했다"며 "그 내용을 사실로 믿고 촛불시위 현장에 나온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이게 허무맹랑한 보도라는 게 지금 밝혀지고 있다"고 했다. 임태희 정책위의장도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공중파 방송의 잘못된 프로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지 생생하게 경험했다"면서 "〈PD수첩〉의 문제는 공중파 방송의 치명적인 과오다"고 했다. 그러자 홍 원내대표가 "방금 임태희 의장이 '과오'라고 표현했는데, 과오는 과실이고 실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번 건은 과오가 아니고 고의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했다.

검사출신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과오가 아니라 고의’라고 주장하고 있다. 과오를 주장하면 형사사건이 성립되기 힘들고 ‘고의’가 받아들여지면 형사처벌이 가능해진다. 형사처벌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인다.

셋 째, 〈PD수첩〉사건은 검찰, 법원,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거의 동시에 경쟁적으로 수사, 조사를 벌이고 있어 단일 언론사건치고 민,형사 처벌외에도 행정처벌까지 내릴 수 있는 공조직이 총동원됐다는 형식적 특징이 있다. 특히 검찰수사는 이례적으로 검사 5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검찰의 자존심마저 걸려있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PD수첩〉사건은 조직간 힘대결 양상을 보이며 다층적 대립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PD수첩〉사건’은 정부와 MBC, KBS의 대립, 더 크게는 정부와 조중동이 한편으로 다른쪽은 MBC, KBS, 경향, 한겨레,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등이 한축을 이뤄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동조합, PD연합회, 방송3사 시사작가 122명 등이 조직적으로 검찰, 법원,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사, 심의의 부당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나서고 있다.

따라서 〈PD수첩〉사건은 원래의 법적, 윤리적 문제의 차원을 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정책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 사회통합보다는 분열과 갈등을 야기할 정치적 사건으로 커져버렸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든 이미 찬반여부를 떠나 한쪽으로부터 비난을 각오해야 하는 부담스런 사건이 됐다는 점은 또 다른 특징이다. 검찰과 법원에서 〈PD수첩〉의 ‘의도적 왜곡’ ‘고의성’ 등을 어떻게 입증해낼지 또한 정치권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건이 필요이상 확대돼버렸다.

*이 글은 7월 8일 ‘PD수첩 사건, 검찰수사 어떻게 보나’ 세미나 발제문중 일부를 재정리하여 미리 보내는 것입니다.
by MoOLpAsS | 2008/07/08 20:14 | eY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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